에밀리 브론테
영국의 여류 소설가 ·시인.
원어명 Emily Jane Brontë
별칭 필명 엘리스 벨(Ellis Bell)
국적 영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영국 요크셔주의 손턴
주요저서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노라 》(1846) 《폭풍의 언덕》(1847)
본문
필명은 엘리스 벨(Ellis Bell). 요크셔주의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C.브론테의 동생이고, A.브론테의 언니이다. 1820년 아버지가 요크셔의 한촌(寒村) 하워스로 전근하게 되어 에밀리 자매들은 그 황량한 벽지의 목사관(현재는 브론테박물관)에서 자랐다. 1821년 어머니가 죽자 이 자매들은 백모의 손에 양육되다가 1924년 에밀리와 샬럿은 위의 두 언니들과 함께 근처에서 목사의 딸들을 싼 비용으로 맡는 기숙학교에 맡겨졌으나 형편없는 식사로 영양실조와 결핵에 걸려 두 언니들이 이듬해에 사망하자, 놀란 부친은 에밀리와 샬럿을 집에 데려왔다. 이 악덕 기숙학교는 후에 샬럿이 소설 《제인 에어 Jane Eyre》(1847)에서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1842년에 에밀리는 샬럿과 함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의 여학교에 유학하여 어학을 공부하고 같은 해에 귀가하였다.
1846년 언니 샬럿, 동생 앤과 셋이서 합저(合著)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1846)을 자비출판했으나 반향이 없었다. 그러나 에밀리는 《죄수 The Prisoner》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노라 No Coward Soul is Mine》(1846) 등의 시편(詩篇)에 의하여 시인으로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847년에 그녀의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이 출판되었으나 이 역시 평이 좋지 못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폐결핵으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서정적인 긴박한 심상(心像)과 독자적인 깊은 인생 해석으로 가득 차서 순수한 감동을 주는 걸작 《폭풍의 언덕》은 오늘날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King Lear》, H.멜빌의 《백경(白鯨) Moby Dick, or the white whale》에 필적하는 명작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황량하고 거친 들판과 히스꽃 만발한 산들로 구불구불 이어진 영국북부 요크셔의 작은
지방에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언니 샤롯 브론테의 “제인에어”와 동생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도 이 광활하고 끝이 없는 듯한 무어지방에서
탄생한다.
워터루전에서 승리를 거둔 웰링턴이 당당한 모습으로 런던에 입성하지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산업혁명은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두 신분계급으로 나뉘어 지게 되고 이 쓸쓸한 시골마을도 산업혁명의 거센 바람을 타고 농부들과 채석장의 노동자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브론테 자매들의 아버지인 패트릭이 1820년 이곳 하워드에 정착했을 때 이미 이 마을은 언덕가 에 죽 늘어선 집들이 화장실도 없이
줄지어 있었고 위쪽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썩은 악취와 물이 밑으로 흘러들고 있었다고한다.
다행히 브론테 형제들이 살던
집은 위쪽에 있었고 에밀리와 샤롯은 밑으로 내려가기 보다는 위쪽으로 올라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약 20분정도 걸어오르다 보면 브론테 형제들이 시간을 보내던 브론테 다리와 폭포를 볼수 있다.
당시 이
지방의 평균수명이 25세였다는 사실은 이 지방이 얼마나 비위생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자가 이곳 하워즈를
처음방문하였을 때는 이미 히스꽃이 만발한 7월의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Keighley를 거쳐 산업혁명의 찌꺼기를 그대로 간직한
구불구불한 도로 곁에는 세월의 시커먼 때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주택들을 볼 수 있었다.
흡사 하노버 왕조의 조지 시대부터
빅토리아 시대까지의 시간이 이곳에서 멈추어 버린듯 나 자신은 100년전으로 빨려들어갔다.
런던에서 350여마일 떨어져 있는 중부
요크지방의 하워드를 살펴보면 서쪽으로 맨체스터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공업도시 리즈가 자리하고 있는데 리즈라 하면 올해 7월7일
런던폭발사고를 주도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주민의 약 3분의 1이 파키스탄이나 인도 방글라데시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주거지이기도 하다.
그 옆에 할리팩스(은행이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도시이름이다.)와 브라드포드가 하워드를 둘러싸고
있다.
하워드에서 핼리팩스에 이르는 도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브론테 자매들과 폭풍의 언덕을 만나려면 버스, 기차, 차량
이용 등의 방법이 있겠는데 버스는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떠나는 메가버스를 이용하면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리즈까지는 약
4시간 가량 소요되고 왕복 17파운드인데 리즈까지 가서 랑카스터나 칼아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Keighley에서 내려 다시 이곳에서
하워즈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차를 이용할 시 킹스크로스역이나 유스톤역에서 Keighley까지 표를 구입하는데 리즈역까지 간 다음
Keighley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하워즈로 올 수 있다.
차량 이용시는 서쪽의 M40를 이용하는 방법과 동쪽의 M1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M40 이용시 버밍햄과 맨체스터를 거쳐 M6의 29-1번에서 M65를 타고 가다 A6068로 접어든다.
A629를 계속 달리다 보면 Keighley를 거쳐 Haworth에 이르게 된다.
동쪽지방의 M1 이용시는 정션 42번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M62를 타고 A650과 A629로 이어지는 복잡한 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서쪽의 옥스포드와 맨체스터 쪽이 싫증이 났다면
레스터와 쉐필드를 거쳐 산업혁명의 옛모습을 맛볼 수 있는 리즈와 브라드포드 핼리팩스 등의 도시들을 즐기면서 동쪽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필자는 가족들과 두번째로 하워즈를 방문하였을 때는 Keighley에 있는 Toby Carvery(01535610611)라는
B&B에서 머물렀다.
비용이 무척이나 싼 편이지만 모든 시설이 깨끗하고 편리하였다.
브론테 자매들은 이곳
하워드에서 1820년부터 살면서 글을 쓴 곳이기도 하다.
브론테 자매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1777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영국의 남서쪽 끝자락 콘웰에서 태어났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아버지가 리버풀에 갔다가 데려온 고아인데
그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은 브론테의 실제 아버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데서 기인되는 것일까?
패트릭 브론테는 캠브리지 존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성공회 교구목사로 임명되어 평생을 목회를 보낸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 역시 스티븐톤에서
목회 일을 하다가 은퇴히고 바쓰에서 정착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목사들의 자녀가 문학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당시의 목사들의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였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부유한 상류계층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녀들이 싸구려 기숙학교에 입학했다가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업도시 리즈 근처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1814년 첫딸 마리아를 낳고 1815년에 두번째 딸 에리자벳을 1816년에는
샤롯을 1817년에는 유일한 아들 브란웰을 1818년에는 에밀리를 1820년에는 앤을 낳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