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문학작품

에드가 엘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시디따논당상 2006. 7. 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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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우의

생일(1월 19일)이 되면
그의 묘지 곁에 코냑 한 병과 장미 세 송이를

남겨 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
1947년부터 계속된 이 비밀스러운 방문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지 언론들은 방문객을 직접 보기 위해
올해도 수십 명의 구경꾼이 몰려 묘지 관계자들이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40세로 인생을 마감한 포우.
그의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은 어린 신부가

먼저 세상을 뜬 뒤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의 곁에 눕는답니다/그곳 바닷가 무덤/

파도 철썩이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서(포우의 시 ‘애너벨 리’ 중에서)”

Edgar Allan Poe

1809. 1. 19~1849. 10. 7

에드가 엘런 포우는 영국 태생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아널드 포와 볼티모어 출신의 배우 데이비드 포 2세의 아들이었다. 1811년 어머니가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죽은 뒤 자식이 없는 리치먼드의 상인인 존 앨런(아마 포의 대부였을 것으로 생각됨) 부부의 집으로 보내졌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로 보내져서 그곳에서 고전 교육을 받았다(1815~20). 1826년 11개월 동안 버지니아대학교에 다니면서 그리스어·라틴어·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를 배웠지만, 그동안 도박에 빠져 후견인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더이상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리치먼드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애인 (새어러) 엘머라 로이스터가 약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27년 보스턴으로 가서 활발한 바이런풍 시들을 모은 소책자 〈태머레인 외(外) Tamerlane, and Other Poems〉를 출간했는데, 그중 일부는 엘머라를 암시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드거 A. 페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육군에 입대했지만, 양어머니가 죽자 존 앨런은 돈을 주고 포를 군대에서 빼내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켰다.

 

포는 그곳으로 가기 전에 볼티모어에서 새로 〈알 아라프와 태머레인 외 몇 편의 시들 Al Aaraaf, Tamerlane, and Minor Poems〉(1829)을 출간했는데, 이 시들은 향토시인 E. C. 핑크니뿐만 아니라 밀턴과 토머스 무어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주일 동안 모든 훈련과 수업을 빠짐으로써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명되었다.

 

그뒤 뉴욕에서 몇 편의 걸작을 모아 〈시집 Poems〉을 냈는데, 그중 일부는 키츠·셸리·콜리지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뒤 볼티모어로 돌아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33년 볼티모어의 한 주간지에 〈병 속에서 찾은 원고 MS. Found in a Bottle〉를 50달러에 팔았으며, 1835년경에는 리치먼드에서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 Southern Literary Messenger〉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거기에서 평론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당시 겨우 13세였던 사촌동생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포는 애정이 깊은 남편이자 사위였던 것 같다. 1849년 그는 〈나의 어머니에게 To My Mother〉라는 시를 써서 숙모이며 장모인 클렘 부인에게 바쳤다.

 

포는 술 때문에 리치먼드의 직장에서 해고되어 뉴욕으로 갔다. 술은 사실 그에게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그는 대화를 잘하기 위해 약간의 흥분제를 필요로 했지만 셰리주 한 잔만 마셔도 발동이 걸려 계속 술을 마셔댔다.

 

만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자주 발견되었다. 이것은 포가 마약중독자라는 억측을 불러일으켰으며,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뇌장애가 있었다. 1838년 뉴욕에 있는 동안 그는 긴 이야기체 산문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를 출간했는데, 이것은 그의 이야기들에서 자주 그러하듯이 아주 엉뚱한 공상과 많은 사실적인 소재들을 결합하고 있다.

 

그것은 멜빌이 〈백경 Moby Dick〉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작품으로 간주된다. 1839년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버튼스 젠틀맨스 매거진 Burton's Gentleman's Magazine〉의 공동 편집자가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월간 특집기사에 대한 계약을 맺어 초자연적인 공포에 관한 이야기인 〈윌리엄 윌슨 William Wilson〉과 〈어셔가(家)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을 썼다. 〈어셔가의 몰락〉에는 포 자신이 아니라 포의 친지였던 것으로 알려진 신경증 환자에 관한 연구가 들어 있다.

 

1839년말에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들 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이 출간되었다(1840년으로 연대가 기록되어 있음). 1840년 6월경에 〈버튼스 젠틀맨스 매거진〉을 그만두었지만, 1841년 다시 그 잡지를 이어받은 〈그레이엄스 레이디스 앤드 젠틀맨스 매거진 Graham's Lady's and Gentle-man's Magazine〉의 편집자가 되어 거기에 최초의 탐정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발표했다.

 

1843년 〈황금벌레 The Gold Bug〉를 필라델피아의 〈달러 뉴스페이퍼 Dollar Newspaper〉지에 투고, 상금 100달러를 받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44년 뉴욕으로 돌아가 〈선 Sun〉지에 〈풍선 장난 Balloon Hoax〉을 기고했으며, 〈뉴욕 미러 New York Mirror〉지에서 N. P. 윌리스 밑에서 부주필이 되었는데, 그뒤 윌리스와는 평생 친구가 되었다.

 

〈아메리칸 리뷰 American Review〉지의 서평용 견본에 따르면, 〈뉴욕 미러〉 1845년 1월 29일자에 그의 가장 유명한 시 〈갈가마귀〉가 발표되었는데, 이 시로 그는 곧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뒤 단명한 주간지 〈브로드웨이 저널 Broadway Journal〉의 편집자가 되었으며, 1845년 이 잡지에 대부분의 단편소설을 재발표했다.

 

그해에 지금은 잊혀진 시인 프랜시스 사전트 로크 오스굿이 포를 귀찮게 따라다녔다. 버지니아는 불평하지 않았지만, 프랜시스는 문학하는 애인에 대한 무분별한 글들을 써서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다. 1845년 〈갈가마귀 외 The Raven and Other Poems〉라는 시집과 〈이야기 Tales〉 선집이 나왔다.

 

1846년 포는 포드햄(지금은 뉴욕 시의 일부)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1846년 5~10월에 〈고디스 레이디스 북 Godey's Lady's Book〉에 〈뉴욕의 지식인들 Literati of New York〉이라는 당대의 명사들에 관한 짧은 만필을 써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다.

 

아내 버지니아는 1847년 1월에 죽었다. 다음해에 포는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 가서 시인 사라 헬렌 휘트먼에게 구혼했다. 그곳에서 잠시 약혼기간을 보냈다. 포는 자신을 재정적으로 도와준 애니 리치먼드, 사라 안나 루이스와 깊은 정신적 사랑을 나누었고 그들 모두에게 시를 써서 바쳤다.

 

1848년에는 우주를 초자연적으로 '해설'한 강의집 〈유레카 Eureka〉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비평가에 따라 걸작으로 호평받기도 했지만 엉터리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1849년에는 남쪽으로 가서 필라델피아에서 미친듯이 술을 마시고 다녔지만, 무사히 리치먼드에 도착해 과부가 되어 있던 셸턴 부인 엘머라 로이스터와 마침내 약혼했다.

 

한 두 차례 병이 재발하기는 했지만 여름 한철을 행복하게 보냈다. 그는 어린시절의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으며 젊은 시인 수잔 아처 탤리와도 우정을 나누었다. 포는 9월말 리치먼드를 떠나 볼티모어로 갈 때 어느 정도 죽음을 예감했다.

 

거기서 그는 한 부인의 생일 파티에서 축배를 든 뒤 마구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심장이 약한 그로서는 이러한 폭주가 치명적이었다. 그는 볼티모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의 부속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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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애드가 앨런 포우



   이제부터 기록하려는 끔찍하고도 솔직한 이야기에 대하여 나는 다른 사람이 믿어주기를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애원하지도 않는다. 내 오관까지도 그것을 부인하려 들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어 달라는 것은 참으로 미치광이의 잠꼬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친 것도 아니고 확실히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일 이 세상을 떠날 신세다. 그러므로 오늘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죄다 풀어 버릴 생각이다. 내가 당면한 일은 단순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솔직히 그리고 간결하게 세상 사람들 앞에 피력하고 싶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결과는 나에게 공포를 주고, 번민을 주고, 마침내 나를 파멸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 사건이 나에겐 다만 공포감을 주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감보다는 오히려 기이한 감을 줄지도 모른다. 이후 어쩌면 어떤 지력-내가 이제 위구의 마음으로 자세히 얘기하려는 전말을 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인간관계의 연속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이 나타나서 나의 환상을 깨쳐 버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성질은 온순하고 인정이 많았다. 이런 유약한 점은 동무들의 놀림거리가 될 만큼 뚜렷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짐승들을 좋아했고, 그래서 나를 귀여워한 부모는 여러 가지 짐승을 나에게 사다 주었다. 나는 이러한 짐승들을 데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애무할 때처럼 즐거운 때는 없었다. 이 성벽은 계속되어 내가 장년에 이르렀을 때에는 중요한 오락의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주인에게 충실하고 명민한 개에게 애정을 느껴 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짐승들에게서 느끼는 강렬한 만족감이라든지 그 특성을 여기서 또다시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변변치 못한 우정과 경박한 성질에 부대껴 본 사람의 마음을 직접 꽉 찌르는 그 무엇이, 동물의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에는 있는 것이다.

    나는 일찍 결혼하였는데, 다행히도 내 아내의 성질도 나와 비슷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아내도 기회만 있으면 귀여운 짐승들을 사들였다. 그 수가 늘어 조류, 금붕어, 개 , 토끼 , 조그마한 원숭이, 그리고 ‘고양이’에까지 이르렀다.

   그중 고양이는 굉장히 크고 아름답고 전신이 까만, 놀랄 만큼 영리한 녀석이었다. 무슨 얘기 끝에 그 녀석이 영리하다는 얘기가 나오면, 으레 적지않게 미신을 믿고 있는 아내는, 까만 고양이는 모두 변장한 마녀라는 옛날부터의 전설을 빈번히 들춰내는 것이었다. 아내가 늘 이 점에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하는  말을 아니지만 웬일인지 이제 갑자기 머리에 그 생각이 선뜻 떠올라서 말한 뿐이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플루토(염라대왕)-이것은 고양이의 이름이었다-는 내 마음에 드는 장난꾸러기 친구였다. 나만이 음식을 주었으며, 그는 집안 어디고간에 반드시 내 뒤를 줄줄 쫓아다녔다. 내가 외출할 때 고양이가 거리로 따라오지 않게 하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나와 고양이는 수년간 친밀하게  지냈는데, 그동안 내 기질과 성격은-광적인 폭음의 결과로(고백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극도로 악화되어 버렸다. 내 성질은 날이 갈수록 침울해 갔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공연히 발끈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욕설까지 퍼붓게 되고, 마침내는 완력에 호소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물론 귀여워하던 동물들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나는 그것들을 본 체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학대까지 하였다. 그러나 플루토에 대해선 그래도 아직까지 다소 애정이 남아 있어 토끼, 원숭이, 개들이 우연히 혹은 반가워하며 내 곁에 왔을 때 그들을 학대하던 것처럼은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병벽은 점점 악화돼-알코올과 같은 병벽이 또 어디 있으랴!-마침내는 이제 노경에 이르러, 괜히 조금만 뭣해도 발끈하여 플루토에게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늘 잘 다니던 거리의 술집에서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돼서 집에 돌아오니, 고양이가 내 앞을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양이를 붙잡았다. 그랬더니 내 꼴에 놀란 고양이는 이빨로 내 손을 할퀴어 손 위에 가벼운 상처를 내었다.

    일순간에 나는 악마적인 분노의 불덩어리가 치밀어 내 자신을 잊어버렸다. 내 선천적 영혼까지도 단번에 내 몸으로부터 사라지고, 악마도 못당할 진(gin-술의 일종)으로 중독된 사심이 내 몸의 곳곳까지 짜르르 퍼졌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펴, 불쌍한 고양이의 목을 붙잡고 한쪽 눈을 태연히 도려냈다. 이 잔인 무도한 폭행을 기록하노라니 나는 얼굴이 화끈하여 온몸이 달아오르고 소름이 끼친다.

     아침에 잠이 깨고 마음 상태가 이성으로 돌아왔을 때 -전날 밤의 폭음의 여독이 수면과 함께 풀렸을 때-나는 내 범죄에 대하여 공포와 참회가 반반 섞인 감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감정도 결국은 미약하고 고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 내 마음의 근본을 흔들 만한 것은 못 되었다. 나는 여전히 폭음으로 나날을 보냈고, 곧 내 행동에 대한 모든 기억을 술에 파묻어 버렸다.

     이러는 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고양이는 회복되어 갔다. 도려낸 눈 구멍은 사실 무서운 꼴이었지만, 이제는 별로 고통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전과 다름없이 집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녔지만, 내가 가까이 가면 아니나다를까, 극도로 무서워하며 도망치는 것이었다. 전에 그렇게도 나를 따르던 동물이 이 모양으로 변한 것에 처음에는 비애를 느낄만큼 그래도 내게 본심이 남아 있었으나, 이 감정마저 곧 분노로 바뀌고, 마침내는 나를 최후의 건질 수 없는 파멸의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 같은 짓궂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 왔다.

     이러한 감정에 대해서 철학은 아직까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 심정의 원시적 충동의 하나-인간성을 지배하는 불가분적 기본 능력, 혹은 정조의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몇 번이고 죄악과 우행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최선의 판단에 저촉해서까지, 단지 법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으로 , 우리는 늘 법률이라는 것을 범하려는 경향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거듭 말하거니와, 이 짓궂은 감정이 기어이 나의 최후의 파멸을 초래하고야 만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고양이에게 내가 범한 위해를 더욱 계속해서, 결국은 고양이를 죽이게까지 나를 재촉한 것은, 스스로 화를 내고, 자체의 본성을 유린하고, 단지 악만을 위해 악을 범하려는 이 영혼의 헤아릴 수 없는 욕망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태연자약한 마음으로 고양이의 목을 붙잡아 가지고 그것을 나뭇가지에 매단 것이다.-눈물을 흘리면서, 마음 한구석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후회를 느끼면서 그것을 매단 것이다. 고양이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가 나에게 분노를 일으킬 만한 이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매단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죄악-나의 불멸의 영혼을, 만약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대자대비하신 신의 무한한 자비심조차도 미치지 못하는 심연 속에 빠뜨릴 최악의 죄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매단 것이었다.


     이 참혹한 행위를 한 그날 밤,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내 침대 커튼에 불이 당겨올랐고, 집은 온통 불에 휩싸였다. 아내와 식모와 나는 가까스로 이 화염 속으로부터 빠져나왔다.

     파괴는 철저한 것이었고, 온갖 재산을 한숨에 홀짝 날려 버려 나는 그 후부터는 절망의 함정 속에서 헤매지 않으면 안 될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는 이 재난과 내 광포한 행위 사이에서 무슨 인과관계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할 만큼 마음이 약한 위인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실의 연쇄(連鎖)를 자세히 얘기하는 것이고, 비록 일환일망정 불안정하게 내버려 두어 마음에 거리끼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화재 다음날, 나는 불탄 자리에 가 보았다. 담은 한쪽만 남은 채 모두 무너졌는데, 그 한쪽이라는 것은 집 한복판에 있는 내 침대의 머리 쪽이 놓여 있던, 그리 두껍지 않은 칸 막은 방의 벽이었다. 회를 바른 것이 상당히 화력에 저항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이 아마 최근에 새로 발랐기 때문에 그러리라 추측하였다. 그 벽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어떤 한 곳을 매우 세밀하고도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걸!”

     “신기한데!“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말이 내 호기심을 이끌었으므로 가까이 가 보았더니 흰 벽에 얇게 조각이나 한 것처럼 굉장히 큰 고양이의 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 인각은 놀라울 만큼 정확했고 고양이의 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다.

     맨 처음에 이 유령 -나는 그렇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을 보았을 때, 나의 놀라움이라든가 공포는 극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성찰은 점점 더 나를 도와 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집에서 좀 떨어진 뜰에 걸려 있었다.

     “불!”이라는 외침에 마당은 몰려든 사람들로 법석거렸고 그들 중 누군가 그 동물을 나무에서 내려 열려진 창을 통해 내 침실 안으로 던졌을 게다. 그것은 아마 나를 깨울 작정으로 행해졌던 것 같다. 다른 쪽 벽돌이 무너지면서 내 잔인성의 희생물인 새로 바른 회벽에 짓눌러 버렸다. 벽의 석회분과 화염과 시체가 발산하는 암모니아분이 함께 혼합되어 이제 보았던 것과 같은 화상을 만들어 놓았을게다.

     이제 바로 자세히 설명한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나는 비록 양심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이성으로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내 상상력에 대해 심각한 인상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여러 달 동안 고양이의 환영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후회 같기도 하고 후회 같지도 않기도 한 모호한 감정이 내 마음 한 모퉁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없어진 것을 섭섭히 여겨, 그 당시 뻔질나게 다니던 하류 주점 같은 데에서라도 대신 구하려고 , 혹시 똑같은 종류의 것이나 또는 다소 닮은 고양이가 있지나 않나 하고 휘휘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어느 날 맘, 아주 하류 주점에서 멍하니 정신없이 앉아 있으려니까, 방안의 중요한 가구를 이루고 있는 진인가 럼(rum, 술의 일종)인가의 술통 위에 쭈그리고 있는 어떤 꺼먼 것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아까부터 그 술통 위를 쭉 바라다 보고 있었는데, 좀더 빨리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하고 나는 가까이 가서 만져 보았다. 그것은 플루토만큼 큰 검은 고양이였는데-아주 큰 고양이었다- 한 군데만 빼놓고는 플루토와 꼭 닮은 놈이었다. 플루토는 전신이 검정이었으나, 이 고양이는 거의 가슴 전체가 희미하게나마 큰 백색 반모로 덮여 있었다.

     손을 대니까 곧 일어나 연성 골골대며 내 손에다 몸을 비비고 내가 아는 체 한 것을 기뻐하는 낯이었다. 이거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고양이였다. 내가 곧 주인에게 그 고양이를 사겠노라고 말했더니 주인은 자기 것은 아니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며 전에 본 일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오려고 할 때까지 고양이를 애무하였는데 내가 일어서니까 고양이도 역시 쫓아올 기세를 보였으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집에 오는 도중에도 여러 번 허리를 굽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쯤에는 고양이는 길이 들어 있었고 아내도 즉시로 그 놈을 귀여워했다.

    그러나 나는 곧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지는 몰랐으나- 고양이가 확실히 좋아하는 그것이 오히려 나를 불쾌하고 성가시게 하였다. 이 불쾌감과 염증은 점점 극도의 증오로 변해 버렸다. 나는 고양이를 피하였다. 일종의 수치감과 전에 저지른 참혹한 행위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고양이를 육체적으로 학대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여러 주일 동안 나는 그놈을 때리지도 않고 몹시 학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점점 -정말 점점-나는 고양이에 대해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증오감을 느끼게 되었고, 마치 전염병 환자의 숨을 피하듯이 고양이 앞을 피하게 되었다.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날 아침, 그 고양이는 플루토와 같이 한쪽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틀림없이 고양이에 대해 증오감을 갖게 한 이유였다. 그러나 전에도 얘기했거니와, 대단히 인정이 많은 내 아내는 이러한 사정으로 도리어 한층 더 고양이를 측은히 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이야말로 전에 나의 특징이었던 동시에 나의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쾌락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고양이를 미워하면 할수록 그와 반대로 고양이는 성가시게 내 뒤를 쫓아다녔다. 내가 어디에 앉든지간에 으레 쫓아와서 내 의자 아래에 앉거나 무릎 위에 뛰어올라, 지긋지긋하게도 핥거나 제 몸을 내 몸에다 비벼대는 것이었다. 내가 일어나서 걸어가려고 하면 어느새 다리 새로 기어들어와 나를 곤두박질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길고 뾰족한 발톱으로 옷에 매달려 가슴까지 기어올라 오는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그저 한 매에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일면 전에 범한 죄악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지만-솔직히 고백하면- 주로 고양이가 까닭없이 아주 무서워서 감히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다.

     이 공포감은 확실히 육체적 위해의 공포는 아니었지만-그렇다고해서 이렇다 하고 규정짓기에는 좀 곤란한 것이다. 고백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실상 이 중죄수의 감방에서조차도 고백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양이가 나에게 불어넣은 전율과 공포감은 매우 보잘것없는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이 고양이와 전에 내가 죽인 고양이 사이의 유일한 상위점은 가슴에 흰 반점이었다는 것은 전에도 얘기하였거니와, 이 흰 반점의 특이성에 대하여 내 아내는 여러번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반점이 크기는 했지만 본래는 대단히 희미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그리고 나의 이성이 오랫동안 그것을 공상으로 부정하려고 싸워 왔는데 마침내 분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것은 무어라고 이름짓기에도 몸서리가 쳐지는 형상이었고, 이것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괴물이 미웠고, 무서웠고, 될 수 있으면 없애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등골이 오싹하는 무서운 교수대의 형상이었다! -아, 그것은 공포와 죄악 - 고민과 죽음- 의 슬프고도 무서운 형상이었다!

     나는 이제는 보통 인간의 처참한 꼴 이상의 처참한 꼴로 떨어져 버렸다. 한 마리의 짐승이-그놈의 친구를 나는 하찮게 죽여 버렸지만- 한 마리의 짐승이 나에게 -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각 속에 모양대로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이와 같은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아! 낮이고 밤이고간에 나에게 안식의 기쁨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구나! 낮이면 고양이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밤이면 또 밤대로 빈번히 표현할 수 없는 공포의 꿈으로부터 깜짝 놀라 깨어나 보면 내 얼굴에는 고양이의 뜨거운 입김이 훅훅 끼쳤으며, 내 가슴 위는 천근이나 되는, 내 힘으로는 꼼짝도 않는 몽마의 화신이 잔뜩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통의 압박 밑에서 쥐꼬리만큼이나마 나에게 남은 ‘선’의 자취는 그만 꼬리를 감춰 버렸다. 흉악한 사상- 가장 사악하고 가장 흉악한 사상- 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나의 무뚝뚝한 성질은 점점 변해서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게까지 되었다. 시시각각으로 돌발하는, 억제하기 어려운 분노의 폭발에 나는 맹목적으로 내 몸을 바치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무 불평도 없이 그 고통을 꾹 달게 참는 희생자는 불쌍하게도 내 아내였다.

     우리는 가난해서 할 수 없이 고옥(古屋)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안일로 아내는 나를 따라 지하실로 들어왔다. 고양이도 험한 계단을 쫓아내려와 하마터면 내가 곤두박질할 뻔하였으므로, 나는 광노가 극도에 달하였다. 나는 격분에 싸여 여태까지 참고 있던 어린애 같은 공포감도 잊어버리고 도끼를 들어 고양이를 향해 내려찍으려 하였다. 물론 내 맘대로 떨어졌다면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을 것인데, 아내의 제지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간섭으로 말미암아 나는 악마도 못당할 만한 격노에 싸여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대신 그 도끼를 아내의 머리에 내려찍었던 것이다. 아내는 끽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이 무서운 살해가 끝나자 나는 곧 이 시체를 감출 방법을 깊이 생각하였다. 낮이든 밤이든간에 이웃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시체를 집으로부터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으므로, 여러 계획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 번은 시체를 잘게 썰어 불에 태워 버리려고도 생각하였다. 다음에는 지하실 마루 밑에 구멍을 파고 그 밑에 파묻어 버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또한 마당 우물 속에 던져 버릴까, 상품처럼 포장해서 상자에 집어넣어 가지고 인부를 시켜 집으로부터 지고 나가게 할까 하는 궁리도 하여 보았지만, 결국 그 어느 것보다도 굉장한 계획이 머리에 떠올랐다. 중세기의 승려들이 그들이 죽인 희생자를 벽에 틀어넣고 발라 버렸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나도 벽과 벽 사이에 이 시체를 틀어넣고 발라 버리리라 결정하였다.

     이러한 목적에 있어선 이 지하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였다. 사면의 벽은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채, 흙손질도 변변히 하지 않고 최근 회로 슬쩍 한 번 발라 버린 것인데 지하실의 습기로 아직 굳어지지 않았었다. 더욱이 벽 한 쪽은 다른 부분과 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 가장으로 연통, 혹은 벽로를 꾸며 놓았기 때문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이 벽이라면 틀림없이 벽돌짝을 뗀 다음 시체를 그 속에 틀어넣고 누가 보더라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벽을 먼저대로 감쪽같이 해 놓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 계획은 빈틈없었다. 철정(쇠막대)으로 아주 쉽게 벽돌을 떼어 시체를 살짝 안쪽 벽에 기대 세우고 그대로 버티어 놓은 다음, 별로 힘들이지 않고 벽돌을 전과 같이 쌓아올릴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회반죽, 모래, 털 들을 사다가 조심에 조심을 다하여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벽돌과 벽돌 사이를 골고루 발라 갔다. 일을 끝마치자, 나는 아주 잘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벽은 조금도 손을 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루에 떨어진 티끌은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주웠다. 나는 득의양양하게 주위를 휘휘 돌아다보면서

“흥, 그래도 헛수곤 아니었군.”

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이와 같은 불행의 원인을 만들어 낸 고양이를 찾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그 놈을 죽여 버리려고 굳게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 고양이가 있기만 했다 하면 그 놈의 운명은 두말할 것도 없었겠지만, 이번에 격노에 질겁하여 고양이는 능글맞게도 슬며시 없어진 채 내가 이러한 기분으로 있는 동안 내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운 고양이가 없어져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그 통쾌한 감각은 그야말로 글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큰 것이었다.  고양이는 그 날 밤새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내가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온 이후 적어도 이 날 밤만은, 살인죄라는 무거운 짐이 내 혼을 누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달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또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어 안도감을 느꼈다. 괴물은 무서워 영원히 집으로부터 도망친 것이었다!

     고양이는 이 이상 더 나타날 리는 없을 게다!

     나의 행복은 더할 나위도 없었다!

     내가 범한 그 무서운 죄도 별로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수차 취조가 있었지만 문제없이 대답할 수 있었고, 한 번 가택 조사까지 있었지만 물론 아무것도 발견될 리 없었다. 장래의 행복은 확정적이라고 나는 낙관하였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나흘째 되는 날, 뜻밖에도 한 대의 경관들이 달려들어 또 한 번 엄중하게 가택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체를 감춘 곳이야 제아무리 하더라도 탄로될 리 만무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경관들은 수색 중 나에게 동행할 것을 명하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낱낱이 조사했다.

     드디어 삼사 회 째에 그들은 지하실로 내려갔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내 심장은 마치 천진난만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심장과도 같이 태연자약하게 뛰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구부려 가슴 위에 얹고 이리저리 유유히 활보하였다.

     경관들은 완전히 의심을 풀리어 떠나려 했다. 내 마음의 기쁨은 제재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나는, 승리의 표적으로 다만 한마디 말을 해서 나의 무죄를 그들에게 한층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불탔다.

“여러분!”

하고, 경관들이 계단을 올라갈 때 참다못해 나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의심이 풀려 무엇보다 기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의 건강을 빌며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집은요, 이 집은 말이죠, 아주 그 구조가 썩 잘 되어 있답니다.(아무거나 술술 얘기하고 싶은 욕망에 싸여 무얼 얘기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특별히 잘 지어진 집이라 할 수 있겠죠. 이 벽들은 말이죠. - 아, 여러분들, 그만 가시렵니까?- 이 벽들은 말이죠, 견고하게 쌓여져 있답니다.“

그리고 나서 일단 말을 멈추고 괜히 미치광이 바람으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막대기로 아내의 시체가 있는 바로 그 부분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러자 하느님, 악마의 독아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때린 소리의 반향이 가시기도 전에 그 무덤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는 어린애의 울음 소리와 같은 것이 막혔다 끊어졌다 하고 들리던 것이 갑자기 길고 높고 계속적인, 아주 이상하고도 잔인한 비명으로 변했다. 그것은 지옥에 떨어진 수난자의 입과 그에게 형벌을 주고 기뻐 날뛰는 악마들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지옥으로부터의 고함 소리며,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섞인 슬피 울부짖는 비명이었다.

     내 기분 같은 것은 얘기하기에도 어리석은 일이다. 정신이 아뜩해서 나는 비실거리며 저쪽 벽으로 넘어질 것 같았다. 계단 위로 올라가던 경관들도 그 순간 깜짝놀라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더니 다음 순간에는 열 두 개의 굳센 손이 달려들어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벽은 한꺼번에 떨어져 나가, 벌써 대부분 썩고 핏덩어리가 말라붙은 시체가 여러 사람들 눈앞에 우뚝 나타났다. 그 머리 위에는 시뻘건, 큰 입을 벌리고 불 같은 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그 무서운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나에게 살인을 하게 한 것이나 비명을 내서 교형리에게 끌려가게 한 것이나, 그 모두가 이 고양이의 간책이었다. 나는 이 괴물도 시체와 같이 함께 벽 속에 틀어 넣고 발라 버렸던 것이다